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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도 '가격'이다. (나는 정말 현명한 소비자일까?)

by Good.PhD 2025. 3. 2.

평소에는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지출을 결정한다. 하지만 여행지에 가면 그러한 조심성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평소에 쓰는 돈이나 여행가서 쓰는 돈이나 동일한 돈이다. 평소에는 조금이라도 지출이 많아지면 손해보는 기분이 들지만, 여행지에서는 왜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 걸까? 이미 여행에 지불한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이미 지출된 비용보다 작아보이는 비용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카지노에서는 진짜 돈이 아니라, 돈을 칩으로 바꿔서 게임을 해야 한다. 실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지출이 거침없어지게 된다. 해외에 나갈 때 환전을 하는 경우, 원화가 아니라서 실제 얼마나 지출하는지 무뎌질 때가 있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평소에 돈에 대해서 느끼느 것을 동일하게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하고 후회하는 우리들... 왜 이성적이지 못한 소비를 하게 될까? 과소비를 하게 만드는 요인이 따로 있는 걸까?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게 가격을 다르게 느끼는 심리를 정리한 책. 댄 애리얼리의 '부의 감각'

 

 

책에서는 우리가 가격에 대해서 느끼는 바를 다양한 일화를 통해서 정리하고 있다. 아래는 우리의 과소비를 촉진하는 여러가지 요인들이다. (예시는 굉장히 많이 나오지만 기억 나는 것 위주로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1. 상대적 느낌: 세일 가격 혹은 공짜는 우리의 심리를 마비시킨다. 세일해서 만원 하는 물건이나, 원가 만원이나 동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일해서 만원에 판매하는 제품을 선호한다. (세일해서 만원인 제품의 원래 가격이 만원 아니었을까?) 여기에는 사실 옵션이 하나 더 있다. 만원어치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이다. 필요없는 물건을 할인가인 만원에 사는 것보다는 애초에 사지 않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세일 혹은 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필요 없어도 구매한다. (공짜도 가격이다!)

 

2. 심리적 분류: 동일한 돈이지만, 그 돈이 지출되야 하는 항목이 이미 정해져있다면 더 쉽게 지불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같은 금액의 현찰과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가 있다. 둘 다 같은 금액이니 경제적 가치가 동일하다. 하지만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는 이미 용도가 고정되어 있다. 이 경우 동일한 음료를 현금으로 마시나 기프트 카드로 구매하나 동일하지만, 기프트 카드로 구매할 때 덜 고통을 느낀다. 이미 기프트 카드 액수만큼 돈이 지불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비싼 금액을 지출할 때도 덜 고민하게 된다.

 

3. 지불의 고통: 돈을 지불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유발한다. 이러한 고통을 덜 느끼는 방향으로 지출이 이루어지면 과소비가 발생할 수 있다. 동일한 서비스이지만 선불로 지불하고 일정 기간 사용하는 경우와 서비스를 매번 사용할 때 마다 지출이 이루어지는 경우 지출 액수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후자가 돈을 덜 내는 경향이 있다. 돈을 낼 때마다 고민하다 보니 지출을 꺼리게 된다.

 

4. 앵커링 효과: 처음 들어본 가격을 기준으로 다른 가격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전문가에게 동일한 집을 보여주고 서로 다른 가격을 보여줬다. 그리고 집의 실제 가격을 맞춰보라고 했을 때, 처음에 봤던 가격이 높을 수록 전문가들이 제시한 가격도 높은 경향을 보였다. 처음 들은 정보를 기준으로 다른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실제로 협상할 때도 먼저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데 그 가격이 앵커링 효과를 낳아서 첫 제시 가격을 기준으로 협상이 진행된다.

 

5. 소유효과: 이미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가격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오랜 기간 살아왔던 집은 실제 가격보다 더 높게 거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에 쌓인 여러 추억이 있기 떄문에 더 가치있다고 인식한다.

 

6. 손실효과: 잠재적인 이득보다 잠재적인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현상이다. 무일푼에서 만원을 버는 것과, 2만원을 갖고 있다가 만원을 잃어버린 경우 경제적으로는 동일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후자를 더 고통스럽게 생각한다.

 

7. 공정함과 노력: 가격이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우산을 사려는데, 가게 주인이 5천원짜리 우산을 내가 보는 앞에서 1만원으로 올려버렸다. 우산이 필요했는데, 갑자기우산을 구매하기 싫어진다. 문이 잠겼다. 열쇠도 없다. 사람을 불러서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2분만에 열어놓고 10만원을 달라고 한다. 날강도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이 2시간을 고생한 끝에 문을 열어주고, 10만원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수고한 대가를 지불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사실 2분만에 문을 연 사람이 더 실력자... 더 실력있는 사람이 돈을 더 받아야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8. 언어: 동일한 품목이지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통해 가치가 높다고 느껴지면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데 거부감이 없다. 그냥 소고기와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건강하게 자란 소에서 얻은 소고기는 다르다고 느끼는 것. (둘이 동일한 고기일지라도!) 제품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서 더 높은 비용이 당연하다고 믿게 만든다. 고상한 표현으로 브랜딩이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인 의사결정도 돈이 연결되는 순간 복잡해진다. 현명한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정보만 볼 것이 아니라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를 통해 가격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소비 패턴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합리적인 소비자야'라고 생각했지만, 책에서 보여주는 일화를 읽으면서 나도 동일한 함정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일한 가치를 다르게 느끼는 모순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내용은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가이드도 되지만, 반대로 기업에서 어떻게 서비스의 가치를 책정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를 이용해서 기업들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김승호 회장님은 특정 사업을 볼 때 항상 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본다고 했다. 원가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 비용 (상가 월세, 관리비 등을 포함한 모든 지출)을 생각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어느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몰랐던 돈에 대한 나의 비이성적인 태도! 부의 감각을 통해 돈에 대한 감각을 되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