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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나는 왜 필요 없는 보험에 가입했을까?

by Good.PhD 2025. 7. 28.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자 보험 가입 권유가 시작됐다. 지나고나서 보니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보험이었는데 괜히 가입했다는 생각을 했다. 찝찝해 하면서도 보험에 가입을 했었다. 나는 왜 원하지도 않는 것에 돈을 지불하는 잘못된 판단을 한걸까? 잘못된 판단을 피할 수 있다면 전반적으로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찰리 멍거는 오판의 심리학을 강조했던 것 같다. 이성적인 사람들이 왜 이상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일까?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설득에 의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 사람은 자동반사적으로 설득에 넘어간다.

칠면조는 칠면조 새끼가 내는 '칩칩' 소리에 반응한다. 그 소리만 들리면 보호 본능이 작동한다. 칠면조의 본능을 시험한 연구자는 박제 족제비를 이용했다. 처음에 칠면조는 박제된 족제비를 경계하고 공격했으나, 박제된 족제비 속에서 칠면조 새끼 소리가 들려오자 갑자기 족제비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칠면조는 새끼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우리도 칠면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반응들이 있다. 이러한 반응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설득당해오고 있다. 이성적으로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내리는 의사결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다. 생각해야 될 것도 너무 많다. 그래서 매 순간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지름길 원칙을 사용한다. 지름길 원칙을 악용하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 손해를 보는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2. 부채 의식과 양보 전략

누군가 나에게 작은 것이라도 베풀어주었다면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부채 의식이 있다. 이러한 부채 의식을 이용한 다양한 설득의 기술이 있다. 공짜 샘플, 대형 마트의 시식 코너 등이다. 무언가를 받으면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하지 않을 때 찝찝한 감정이 남게 된다. 이러한 감정을 이용한 설득 방법이다. 물론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호의를 설득의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거절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무리한 제안을 던지고, 양보하는 것처럼 해서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거절 후 양보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양보를 해줬다면, 나도 양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잘못된 설득에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가 처음에 가입했던 암보험은 다시 생각해봐도 필요없는 보험이었다. 내가 그 보험에 가입한 이유 중 하나는 보험설계사가 지속적으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왠지 그 분의 시간을 내가 빼앗고 있다는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부채의식이 보험가입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된다. 

 

3.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

사람은 한번 입장을 정하면 그 입장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있다. 일관적인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처음에 애매모호했던 입장이 한번 정립이 되면, 그 방향으로 계속 말과 행동이 일치되도록 움직이게 된다. 특히 글을 쓰게 만들면 자신이 적은 글과 일치하는 입장을 확립하게 된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사로잡은 미군 포로에게 사용한 전략이다. 중국은 미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했고, 소소한 상품(하지만 감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걸었다. 미군 포로들은 전적으로 공산주의에 동의하는 글을 적지는 않았지만 백일장에서 선정되기 위해서 중국에 대해 소소하지만 긍정적인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에게 유리하게 이용되었고, 또한 그렇게 글을 적은 사람도 자신이 적은 대로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결국 미군 포로들 중 중국을 부정적으로  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에게 협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략에서 중요한 점은 처음에 별거 아닌것 처럼 보이는 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작은 공' 전략이라고 부르는데, 별거 아닌 부탁으로 시작한다. 백일장의 참여 또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참여해서 상 받으면 좋고... 정도로 시작했기 때문에 포로들은 거부감이 없었다. 사소한 부탁으로 입장을 정립하게 만들면, 이렇게 만들어진 입장을 사용해서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 나도 모르게 입장을 정하게 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생명 보험에 처음 가입할 때 보험 설계사가 가족에게 유언을 남긴다는 느낌으로 편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보험 설계사와 만나서 생명 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이러한 편지를 적게 되면 죽음 이후에도 가족들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화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험 가입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4. 다수를 따라하려는 성향

굉장히 낯선 상황에 처하게 된 경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먼저 살펴보려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렇다. 뜬금없는 요청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도 요청을 받았는지 물어보곤 한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했던 행동을 따라해볼까? 하는 생각에 물어보게 된다. 대다수가 하는 행동이라면 보통은 옳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하는 행동을 거스르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사이비 종교의 자살 사건이 이러한 성향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교주가 독약을 마시라고 명령했을 때 교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소수의 행동을 다수가 묵묵히 용인하고 있다면, 이 효과가 힘을 발휘한다. 사람이 죽어갈 때마다 독약을 마실 의사가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때 오해가 발생한다. 다들 속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조용히 고민만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왠지 교주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대화를 했다면 이러한 오해를 파악했겠지만, 그 상황의 분위기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러면서 대다수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응급처치 교육을 받을 때 첫단계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때 특정인을 정확하게 지목해서 (안경 쓰고 빨간옷을 입으신 여자분) 어떤 도움을 줘야하는지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도움을 받기 쉽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곳에서 위험에 처한 경우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다수의 사람이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특정 사람을 지정해서 도움을 요청하면 다같이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즉 몇몇의 도움을 끌어내야 그 사람들을 보고 다수가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실제로 예전에 기숙사에 거주할 때, 창문을 청소하시던 분이 4층에서 떨어져서 부상을 당하신 적이 있다. 그 분은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10분간 아무도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장소에 있었지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숙사에 사는 대다수가 그 상황을 그냥 묵인하고 있다면, 그 상황은 심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들었다. 당시 같은 방을 쓰던 형이 상황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신고했기 때문에 그 분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 비명이 들린 후 한참이 지나서 처한 조치이긴 하지만... 이렇게 다수를 따라하려는 성향은 매우 강한 힘을 갖고 있다. 

 

5. 호감의 원칙

생판 모르는 남의 부탁은 거절해도 덜 미안하다. 그렇지만 친한 친구의 부탁은 거절하기 영 어렵다. 처음 가입했던 보험은 같은 대학교 출신이면서 같은 교회를 다니는 분을 통해 가입하게 되었다. 심지어 밥까지 사주면서 권유하니 거절하지 못해서 가입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호감을 얻어냄으로써 설득을 해내는 전략이다. 광고를 보면 실제 광고하는 제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명 연예인이 나와서 광고를 하기도 한다. 이는 제품과 연예인의 이미지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이렇게 특정 제품이나 브랜드에 호감이 생기면 사람들은 좀 더 쉽게 구매로 연결된다.

외모가 뛰어나서 호감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손해가되는 행동을 하면서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전략도 있다. 미국 같은 경우 식당에서 서빙하는 사람들은 팁이 주요한 수입이다. 음식 값의 일정 비율을 팁으로 받기 때문에 고객이 고가의 음식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책에서 소개된 직원의 예시. 손님이 주문을 하면 자신이 내부자로써 비밀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메뉴는 오늘 식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니 다른 메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때 좀 더 저렴한 메뉴로 소개한다) 이렇게 손님을 위한 행동으로 밑밥을 준비해서 손님의 호감을 얻게 되면 나중에 고가의 메뉴를 주문하도록 유도한다. 혹은 디저트를 먹을 생각이 없던 손님들이 디저트를 주문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호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설득 전략을 조심해야 한다.

 

6. 권위의 힘

사람들은 전문가의 견해라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도 비슷하다. 간호사는 의사의 지침에 따라 행동한다. 그런데 의사가 실수로 잘못된 지침을 내려도 간호사가 그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의사의 권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컬투쇼에 소개된 치질약에 대한 사연도 비슷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름이 비슷한 두 친구가 약을 혼동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다. 한명은 치질. 다른 한명은 코가 헐어서 약국에서 약 처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질인 친구가 잠깐 화장실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에, 코가 헐은 친구가 치질약을 처방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약사님은 항문에 약을 바르는 방법을 설명했지만, 그 친구는 환부를 코로 착각해서 콧구멍에 손가락 2개를 콧속에 쑤셔넣으려는 말도 안되는 시도를 한다. 상식적으로 약사의 설명이 말이 안된다면, 사실 내용을 확인했어야 하지만 약사의 권위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다가 몇번 피해를 봤다고 느끼면서부터는 이러한 설득의 효과가 약해진 것 같다. 전문가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참고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권위의 효과에 의한 오해를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다.

 

7. 희소성의 원칙

이번 아니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사람들은 약간 조급해지고 필요없는 것도 구매하게 된다. 쓸모없는 암 보험은 희귀성의 원칙 때문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번 아니면 이렇게 좋은 가격으로 가입하지 못해요. 그래서 가입했지만, 역시 그때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아무리 좋은 조건이더라도 내가 직접 따져보고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급하게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원칙을 갖고 있다. 

원래는 희귀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희귀해지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특정 노래가 금지되거나 특정 서적이 금지당하는 경우. 그 책이나 노래에 관심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러한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이렇듯 무언가가 갑자기 희귀하다고 느껴지면 관심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8. 지름길 원칙

바쁜 현대인들은 모든 문제에 열과 성을 들여 고민하기 어렵다. 그래서 덜 고민하면서도 잘못된 판단을 피하려고 한다. 이때 사용하는 원칙들이 바로 앞에서 소개한 원칙들이다. 위 원칙들을 따라 판단을 한다면 잘못된 선택을 피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문제는 이러한 원칙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전략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내가 혹시 원칙에 속아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